사회에 만연한 위험불감증극복을 위해 필요한 청설의 자세

 

세월호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가운데 201452일 오후 330분 국내 최고령 도시철도인 지하철 2호선 추돌사고(290여명 부상)가 발생하였다. 아마도 대다수 국민들은 2003218일 오전 953분에 발생하여 192명 사망, 151명 부상이라는 엄청난 피해를 남긴 대구 지하철 참사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또한 20141017일 오후 550분경에는 판교의 공연장 인근 환풍구가 무너져 내리며 16명 사망, 11명 부상이라는 인명손실을 초래하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지 정확히 6개월 만의 참사였다. 과거에는 몇 년에 걸쳐 한번 씩 발생하던 이런 대형 재난안전 사고들이 최근 들어 일 년에도 몇 차례씩 발생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건설공학 및 과학기술 등이 눈부시게 발전하였고 재난에 대응하는 국가의 관리체계 역시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여 정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해가 갈수록 발생하는 재난의 규모와 피해는 늘어만 가고 있다. 이렇게 한 해에도 몇 차례나 반복되는 재난피해와 그로 인한 사회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가 왜 이런 안전위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지에 대해서 명쾌한 해답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올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대답으로는 국가의 재난관리체계가 미흡해서 안전사고가 연달아 발생하고 있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것도 이 위기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해답은 아닌 듯하다. 우리나라의 재난관리체계를 살펴보면 국가가 직접 나서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 것은 1975725민방위기본법제정 이후이다. 200461일에는 우리나라 재난관리사에 큰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국가 최초의 재난관리 전담기구인 소방방재청이 설립되었다. 또한 최근에는 소방방재청과 해양경찰청 등으로 분산되어 있던 재난 관리기능을 통합하여 재난안전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될 국가안전처의 신설이 논의되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재난을 담당하는 기구들은 시대의 필요와 국민들의 요구에 맞춰 바뀌어 왔고 지금도 역시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 안전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여러 정부들이 국가재난관리체계의 정비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그것을 가장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은 바로 현 정부라고 생각한다. 재난안전사고가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런 역설적인 생각을 갖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 중에서 살펴보면 안전행정부로의 명칭 변경, 방재안전직렬의 확대, 국가안전처의 신설 추진 등을 들 수 있다. 먼저 과거 행정안전부의 명칭을 안전행정부로 변경한 것으로 각종 부서의 대외적인 간판부터해서 문서 안의 명칭까지 변경하는데 사용된 비용은 총 30억 원 정도로 추정된다. 이와 같은 많은 비용을 사용하면서까지 굳이 명칭을 변경한 것은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현 정부의 대외적인 의지표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현 정부의 또 다른 노력으로는 방재안전직렬 공무원의 확대가 있다. 방재안전직렬은 안전행정부와 소방방재청 등에서 현재 2,400여명의 공무원이 방재안전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나, 1~2년마다 업무가 바뀌는 순환보직제 등으로 업무의 전문성 확보가 어려운 점과, 지방자치단체에서 인식 부족으로 재난안전관리과를 축소 또는 폐지하고 있는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마련되었다. 당초 정부는 부처 수요 등을 고려해 공개경쟁채용으로 방재안전 공무원을 선발하기로 했으나, 실제로 방재안전직렬 채용인원은 국가직이 아닌 지방직의 극소수로 축소·변경하는 등, 대전시와 충남도가 9급 공채로 방재안전직렬 공무원을 각각 2명과 3명을 선발한다고 밝혔었다. 하지만 지난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로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한층 높아짐에 따라 방재안전직렬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선발 인원이 대폭 늘어나는 등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또한 현 정부는 2014429일 국무회의를 통해 기존의 소방방재청, 해양경찰청의 기능을 유지하며 분산된 재난관리 기능을 통합하여 강력한 재난안전 컨트롤 타워를 구축하고 재난 현장의 대응성, 전문성 강화를 위해 국가안전처를 신설한다고 밝혔으며, 529일 재난안전관리시스템 개선과 공직사회 개혁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등의 개정안을 입법예고 하였다. 이런 사례들은 현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어떠한 제도적인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 정부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왜 안전위기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을까? 그 해답은 어쩌면 국가 재난관리체계의 취약함보다 먼저 우리의 부족한 안전의식 속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20141020일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안전의식 실태와 정책 과제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안전의식은 100점 만점의 17점으로 나타났다. ‘새벽에 차가 다니지 않는 도로에서 교통신호를 준수하는가?’, ‘승용차 뒷좌석에서 안전벨트를 착용하는가?’ 등의 기본적인 안전규칙 준수의식이나 심폐소생술 관련 실습교육 경험 여부가 있는가?’, ‘지하철에 설치되어있는 심장 제세동기 사용법을 알고 있는가?’ 와 같은 안전교육수준에 대한 평가지표로, 이는 2007년 조사결과인 30.3점과 비교하면 오히려 전보다 퇴보한 결과이다. 이것은 사회가 과거보다 발전되어 재난에 대한 대비를 과학이 대신 해결해 줄 것으로 과신하는 경향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분석되었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사회가 더 안전해졌다고 믿는 대중들의 일반적인 통념에 대해 여러 안전전문가들은 한국 사회가 과거보다 더 안전해졌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이다. 도시가 발달하면서 우리 사회의 위험 요소는 더 커지고 복잡해진 반면 시설은 낡고 노후 됐기 때문이다.”라고 우려 섞인 경고를 보내고 있다. 과거보다 더 커진 주변 환경의 위험요소들과는 반대로 더 퇴보한 우리의 안전 의식이 어쩌면 우리 사회를 극심한 안전 위기 속으로 몰고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회적 재난이 발생하는 원인으로 국민들의 안전의식이 부족하다는 표현 대신에 사회가 안전불감증에 빠졌다는 말을 주로 사용하곤 한다. 하지만 여기서 안전불감증이라는 용어는 위험불감증으로 바꿔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안전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나 판교 통풍구 추락사고 모두 선박의 노후화나 통풍구의 구조적 취약함 등의 물리적 원인도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고에 결정적인 역할을 미친 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위험불감증이라고 볼 수 있다. ‘차량을 한 쪽만 고박(결박)해도 괜찮겠지’, ‘다들 올라가는데 통풍구 위에 올라가서 봐도 괜찮겠지하는 위험불감증이 전례 없는 참사를 일으킨 것이다.

 

비록 사후약방문 격이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선박에 대한 안전 규제가 한층 강화되었다. 과거에는 선박의 탑승으로부터 도착까지 10분여밖에 안 걸리던 가까운 섬까지의 운행시간도 이제는 30분을 훌쩍 넘기게 되었다. 승객 소유의 차량을 선박에 고박(결박)하는데 적용하는 기준이 예전에는 편의 위주였다면 이제는 철저한 원칙위주의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된 여건에 선박을 이용하는 승객들은 길어진 대기시간에 불편을 느끼고 선박을 운영하는 선주들 역시 줄어든 소득에 불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고 다지는 데 초기에는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많은 불편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불편은 익숙해지면서 원칙으로 인식되어지고, 많은 예산투입은 시간이 지나면서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예산투입으로 예산절감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선순환적인 형태로 되돌아오게 된다. 국민들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안전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서라도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라는 안전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 이런 변화를 가능케 할 것이다.

 

최근 발생한 판교 공연장 환풍구 붕괴 사고 이후에 서울 강남구청엔 이전까지 한 번도 접수된 적 없는 종류의 민원이 하루에 4건 이상 접수된다고 한다. 지하철 환풍구 철제 덮개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며 점검해 달라는 민원들이다. 사고 이후 국민들이 자신들의 발밑을 살피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환풍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같은 시설물 전체의 안전에 대해서도 다시 살피자는 안전에 대한 국민적 각성의 움직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신고 기능이 탑재된 안전 관련 스마트폰 앱을 다운로드하는 시민도 크게 늘었다. 올해 9월 전까지 하루 평균 다운로드 수가 50여건에 불과했던 안전관련 앱은 10월 중,하순 들어 140%이상 급증했으며, 소방방재청이 제작한 안전디딤돌과 안전행정부가 만든 생활불편 스마트폰 신고는 나란히 인기 앱 순위 150위 안에 들었다. 이런 움직임은 국민들에게 안전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필자는 안전한 사회를 위해선 국민들 개개인에게 재난을 살피는 청설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청설이란 어구를 풀이하자면 싸릿문 밖에서 내리는 눈 소리를 안방에 앉아서 듣는다는 뜻으로 그만큼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무언가를 살핀다는 뜻이다. 사소하게 여길 수도 있는 환풍구의 삐걱거리는 소리에서도 재난의 위험을 감지할 수 있는 국민들의 높은 안전의식이 사회에 만연한 위험불감증을 극복하고 우리의 안전한 사회를 보장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