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교수님. ○○군의 박○○입니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201911일자로 민원과로 발령받아

201731일부터 110개월간 있던 ○○군의 재난·안전 부서인 안전관리과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2년 전에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안전 분야에 대한 가능성에 대해 눈뜨게 되어 방재안전직렬이 될 생각까지 했던 저이지만,

발령받아 떠나자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보니저도 어쩔 수 없나 싶습니다.

 

근무하면서 느꼈던 어려움 같은 것들을 이야기할 곳도 없던 차에, 교수님이 떠올라 이렇게 메일을 보내봅니다.

혹시 부담스러우시다면 그냥 지우셔도 좋습니다.

 

먼저 제가 몸 담고 있는 ○○군에 대해 실망을 많이 했습니다

110개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안전은 뒷전"인 현실을 너무도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재난이 터지면 가장 먼저 보고를 받고 먼저 직원들을 지휘해야 할 부서장으로,

□□가 집인 도청의 사무관 분들을, 정부 예산 따오기 좋다는 이유만으로 파견 받는 것을 보고 실망했습니다.

평일에야 ○○에 계실 테지만, 주말이면 ○○ 밖으로 나가시고,

○○ 지역의 현황에 대해 잘 아시던 분들도 아닌 분들이 부서장으로 오시니

지난 여름 실제 태풍과 같은 재난 상황이 왔을 때리더의 지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정부 예산을 따오기 위해 공사와 사업을 위해 재난예방, 재난복구 두 팀을 전부 시설직으로 두고,

예산 확보와 관계 없는 안전과 재난에 관한 다른 업무들을 제가 있던 안전총괄팀으로 모두 떠넘기는 걸 보면서

제가 이 부서에서 전문성을 쌓고자 노력해봐야, 아무 소용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년 겨울 문득 저한테 공문을 보내는 광역지자체(□□) 직원 수를 세어봤더니 11명이었습니다.

안전 관련해서 뭔가 정책을 만들어본다거나 하는 걸 생각도 할 수 없었던 게 너무도 당연한 상황이었습니다.

 

재난관리평가에서 현장위원분들과 인터뷰를 할 때는 재난 안전 업무 보는 직원들에게 잘 대해주겠다고 하면서도

군에서는 지침에서 권하고 있는 인사가점도 시행하지 않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제가 직접 □□까지 왕복 4시간 걸려 □□에 가서 인사담당자로부터 인사계획을 받아다가

우리도 재난 안전부서 직원들한테 가점 주자고 제안을 해도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재난관리평가에서 '미흡' 받아서 '망신'만 안 당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입니다.

실제 재난대비 역량은 관심도 없고, 그저 점수만 따오면 그만이라는 생각입니다.

○○군의 2018년 지역안전지수에서 자살이 '5등급'이 나온 게 괜히 나온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의 자살률은 44명으로 평균의 2배에 가깝습니다)

그러고보면, ○○에서 안전부서는 직제순도 제일 낮습니다.

□□군을 보니 행정과나 재무과는 지원 부서로 제일 아래에 있지만, ○○군은 그렇지 않습니다.

교수님 세대의 분들이 단체장이 되고 하면, 언젠가 ○○도 변하지 않을까 그렇게 막연히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중앙(행정안전부)도 답답합니다.

안전신고와 관련해서 민간단체로 안전모니터봉사단이 있음에도 안전보안관이라는 법에도 없는 조직을 만들도록 강제하거나,

"지역안전지수"라는 통계에 기반한 지역의 안전 수준을 제대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도구를 만들었으면서도

지역안전지수를 활용한 정책을 수립하도록 독려하기보다는, 재난관리평가니 지역안전도니 하는 각종 서류 작업 평가들만 강요하고,

평가도 모자라서 안전감찰이라는 또 하나의 "감사제도"를 만들어 안전 부서에 근무하는 직원들을 괴롭히는 걸 보면서

안 그래도 내부적으로도 직원들이 기피 1, 2순위로 꼽는 곳이 안전 부서인데,

아예 국가에서 제도적으로 기피부서를 만들려고 작정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기초지자체와 스타트업으로 인재들이 가야만 우리나라가 앞으로의 위기(고령화 등)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와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어 보입니다

 

감기 환자가 많은 겨울입니다. 교수님께서는 부디 건강한 겨울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